전문가들 “벌점제도, 국내밖에 없어”…폐지 주장도
(엔지니어링데일리)조항일 기자=건설엔지니어링업계의 부실벌점 산정방식이 발주처의 갑질 횡포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건설업계와 부실벌점 산정방식 변경을 두고 조율을 거쳐 오는 2023년으로 시행을 2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국토부는 부실범점 산정방식을 기존 평균방식을 합산으로 바꾸는 것, 공동이행방식의 공사 및 용역(컨소시엄)에 대한 벌점 부과를 출자비율이 아닌 대표사에만 주는 방식 두가지를 핵심으로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벌점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가 커지면서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중 대표사에만 벌점을 부과하는 항목은 역차별 논란으로 가부를 당장 논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토부는 평균방식을 합산방식으로 바꾸는 틀에 대해서는 사실상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거센 반발에 국토부는 벌점 부과기준 및 절차개선 등을 보완책으로 내놓았다. 먼저 벌점 부과기준을 안전에 초점을 맞춰 설계변경 등 행정처리와 관련한 부분은 벌점 대상에서 최대한 제외하기로 했다. 또 발주처가 벌점을 부과할 시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청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심의위는 발주처별로 운영되며 전원 외부위원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건설엔지니어링업계는 이번 개정안이 자칫 발주처의 횡포를 합법적으로 만들어주는 제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벌점부과 방식이 모호해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시공-엔지니어링사 간 책임소재를 두고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A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건설사의 경우 벌점에 따라 주력사업인 아파트 선분양 가부가 결정되는 만큼 필사적으로 벌점을 막으려고 할 것”이라며 “사고를 설계 문제로 몰아가기라도 하면 상대적으로 입김이 약한 우리가 당할 수 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소송이라도 가면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 등이 얼마나 될지 알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B사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된 검증보다는 평소에 발주처와 누가 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느냐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안전을 빌미로 발주처의 갑질 횡포를 합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밖에 안된다‘고 강조했다.
벌점 남발을 막기 위해 마련한다는 심의위에 대해서도 논란이 점쳐지고 있다. C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투명성을 위해 외부위원으로 구성한다고 하는데 혹여 비전문가인 시민단체 출신이 개입하기라도 한다면 심의위 자체의 의미가 없어진다”며 “철저히 업계 전문가 위주로 구성되야만 그나마 제도가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벌점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최근 정부가 포스트코로나 대책으로 엔지니어링의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한다면서 벌점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국내 업계의 경쟁력을 깎아내린다는 주장도 있다.
D사 관계자는 “벌점제도를 가진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엔지니어링 선진국들의 경우 문제가 생긴 업체들은 일정기간 입찰제한을 한다던지, 발주처에서 자체적으로 해당 기업을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벌점기록을 남기게 되면 해외수주시 경쟁업체들이 발주처를 설득할 때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며 “개정안이 현재안대로 시행되면 안그래도 어려운 해외경쟁력을 더 잃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