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3,500개사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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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3,500개사의 딜레마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4.10.16 12:5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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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기준 한국의 건설엔지니어링사는 3,556개다. 전문가인 엔지니어들에게 물어도 이름을 들어봤거나 알고 있는 회사는 100여개 정도다.

여기에서 다시 40위권 내 회사에게만 주관사 자격이 주어진다. 이들은 정부나 시장에서 인정받은 업체들인만큼 굵직한 사업에서는 주관사만 다를뿐 컨소시엄 구성이 대체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3,400여개의 회사들은 어떻게 먹고 사나. 지역공동도급이다. 올해로 시행 30여년이 된 제도는 시공분야의 경우 지역업체 지분 30% 참여가 의무화 돼 있다. 건설엔지니어링업계는 공식적으로 권장사항이지만 적격심사에서 지역참여도를 넣고 있어 사실상 반강제조항이다.

100원짜리 사업에서 30원은 무조건 지역업체에게 배분해야 하다보니 대형사들 입장에서는 실행이 안나온다는 얘기가 나온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안부는 지방계약법 개정안을 통해 발주청의 PQ점수 자율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수십년의 세월동안 채 50개가 되지 않는 회사가 한국의 엔지니어링시장을 지배해 왔다는 시각에서 보자면 행안부의 선택은 타당해 보인다. 더욱이 자유시장경제보다 건전성 확보를 우선하는 정부의 특성을 감안하면 소수의 독과점 시장인 엔지니어링업계는 반드시 평탄화해야할 산업이다.

하지만 정부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엔지니어링업계의 모습은 어떠한가. 시장의 평등과 분배라는 공산주의적 가치가 일반화되면서 경쟁력 없는, 마땅히 사라져야 할 회사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회사들을 어떻게든 살려두면서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물론 기술력을 갖추고 회사의 신용도도 괜찮은 강소기업이 있지만 페이퍼컴퍼니가 절대다수다. 지역가점을 맞춰야 하니 강소기업을 놓치면 사업을 포기하거나 운좋게 낙찰을 받아도 일은 모두 주관사 몫이다.

많아진 머릿수로 치열해진 시장의 과실은 모두 공무원의 몫이다. 일감은 정해져 있는데 입찰할 기업은 많으니 결국에는 누가 더 공무원의 비위를 잘맞추냐가 산업의 핵심이다. 소기업은 운때만 맞으면 단타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버니 로비를 하고, 대형사는 대형사대로 규모를 키우기 위해 로비를 한다. 집을 사고 팔고하는 사람 모두에게 수수료를 받는 공인중개사마냥 양쪽에서 로비를 받으니 이보다 좋은 직업이 어디있겠나. 수많은 엔지니어링사의 존재는 무한경쟁을 통한 기술적 성장이 아닌 로비비의 단위만 키웠다. 여기에 엔지니어링업계를 둘러싼 수많은 규제는 시장의 안위가 아닌 로비의 명분을 돈독하게 할 뿐이다.

결국에는 다시 규모가 큰 대형사들이 압도적인 자본력을 활용해 시장을 지배한다. 지역가점을 위해 지역 거점 계열사를 만든다. 그리고 다시금 시장을 그들만의 리그로 만든다. 건설경기가 안좋다는 상황에서도 대형사들은 작년보다 더 많은 수주를 확신하고 있다고 하니 또 얼마나 많은 로비가 이뤄졌을지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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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꼴뚜기 2025-03-27 14:31:43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기사네요..ㅋ

기술자 2024-10-21 00:04:25
대형엔지니어링사는 해외진출하고 국내일은 중소규모 업체가 해야한다
대형엔지어링사 불법적으로 외주처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는 있는가요

레이닝 2024-10-17 11:16:53
일기를 쓰고 싶으면 일기장에 쓰길 바랍니다.

와우 2024-10-16 19:17:39
지역사업은 지역업체들이 일정부분 100% 하는게 맞음. 실적도 일을 해야 쌓이는거지 일도 안시키면 어떻게 지역사에서 실적을 올릴 수 있는가~ 일을 한번 시켜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 업체 배제 하는 장치까지 같이 만들면 됨

설계사 2024-10-16 17:06:42
지역가점제는 없어져야 합니다 일도 할수없는 업체들과 강제로 JV하게되니.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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