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률 천차만별에도 무리한 과세 이뤄져
(엔지니어링데일리)박성빈 기자=#1. A사는 중동에서 4,000억원 규모 EPC사업을 수주했다. 500억원가량 영업이익이 남아 해외법인의 수익으로 뒀다. 몇 년 뒤 국세청은 이 500억원을 본사에 귀속시키지 않은 게 문제라며 해당 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뒤 법인세 납부를 종용했다. A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감수해야 했다.
#2. B사는 아프리카 도로 감리 사업을 수주했다. 기성금을 받는대로 본사와 지사간 이익금을 정산했다. 국세청은 본사에게 갈 영업이익과 법인세 납부금이 더 있다고 간주했다. 세액이 예상보다 2배 이상 커지며 마이너스 부담이 늘어난 B사는 사업에서 중도철수하고 후속사업도 포기했다.
엔지니어링사가 해외사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이중과세 부담을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본사와 해외법인의 이익정산을 문제삼아 본사 수익이 더 많아야 한다고 보고 추가과세도 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이미 해외 세무 당국에 법인세를 지불했는데 한국에서도 세금을 내라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라고 주장한다.
4일 건설엔지니어링업계에 따르면 사업비 규모가 큰 EPC에서 설계와 조달은 본사, 시공은 해외법인이 담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시공 분야에서 매출이 더 많이 발생하고 이익금 역시 해외지사에 더 많이 할당한다. 국세청은 본사 경쟁력으로 사업을 계약한 것이라면서 본사에게 가는 금액을 더 늘리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국세청이 언급한 경쟁력이란 기술력과 PM능력·영업력 등을 포괄하는 무형자산을 뜻한다. 업계는 국세청이 해석한 무형자산의 의미가 사실상 과세범위를 무한정 늘리는 논리라고 반발한다. 법적으로 등록된 특허나 저작권이 아니기에 불명확한 과세 근거라는 뜻이다. A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이 사업은 본사 인력이 잘해서 딴거고 그래서 과세대상이라는 맥락”이라며 “영업력이나 인력활용까지 무형자산으로 보고 과세를 매기면 과세되지 않을 대상이 뭐가 있나”고 항변했다.
국세청이 세수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기조를 전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종서 법무법인 율촌 회계사는 “업계의 해외사업 수익이 커지니 새로운 과세논리를 펼치는 것”이라며 “기업입장에선 형평성 문제를 느낄 법 하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사업의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경우에도 과세하려 한다는 점이다. 기업은 공사기간에 따라 기성금을 받고 이익률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5년 단위로 세무조사에 나서면서 준공되지 않거나 구체적인 매출 산정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본사 할당분이 적다며 과세를 집행하고 있다. B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이익률이 들쑥날쑥한 공사도 특정 기간의 이익률을 집어 해외에 많이 몰아줬다고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OECD국가 다수는 무형자산을 이유로 건설엔지니어링사업에 무리한 과세 시도를 하지 않는다. B사 관계자는 “영업력, PM 능력은 구체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자산”이라며 “해외는 제조업같이 이익 분할을 분명하게 측정할 수 있는 업종에 한해 국세청처럼 과세한다”고 말했다.
해외 세 부담을 덜기 위해 법인이 아닌 지점을 운영하는 중견사에게도 같은 과세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국세청은 마찬가지로 본사 경쟁력이 없었다면 해외 수익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 지점 수익 중 일부를 본사 몫으로 재산정해 추가 과세를 하는 경향이다. B사 관계자는 “지점 수익도 결국 본사 수익으로 귀속될텐데 이를 왜 과세하는가. 해외사업을 하지 말라는 거냐”고 항변했다.
상호합의절차처럼 본사와 지사간 이익률을 사전에 정해 이중 과세 리스크를 차단하는 국가 간 합의 제도가 있지만 나라마다 참여 의지가 다르다. 박 회계사는 “중동은 최근 들어 해당 제도를 시도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세수가 줄어들 우려 때문에 잘 호응하지 않는다”며 “수익을 본사에 더 많이 두라는 으름장은 기업의 해외사업 진출 의지를 꺾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