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건설엔지니어링업계를 지탱하는 근간은 규제와 처벌이다. 산업의 진흥이 아닌 규제를 뿌리로 하다보니 민간의 창의보다는 관리우선주의에 매몰됐다. 생존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도전보다 그저 안주하면서 남이 벼랑에서 떨어지길 기다리면 알아서 시장의 강자가 되는 구조다.
시장에 법제도가 만연해진 이유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민정서에 있다. 나에게는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지키기 힘든 수준의 도덕적 엄격함을 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유연성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이성의 틀이 선악의 이분법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는 선이요, 가해자는 악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너나할거없이 도덕적 우월감을 표시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정부와 정계는 이러한 국민정서를 표심으로 연결하기 위해 유독 건설업계를 가혹하게 담금질하고 있다. 결국에는 건설종사자는 잠재적 범죄자가, 정부는 판사를 넘어 신의 위치에 올라섰다.
국토부가 입법예고중인 국가인증감리제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다. 핵심은 국가인증을 받은 감리원 400명을 선발해 이들을 보유한 업체에 대해 입찰가점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건설카르텔의 굴레를 국가가 개입해 끊어내겠다는 게 취지다.
정부가 대단한 결심을 한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국가개입과 사고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국가인증을 받는다고해서 기술자의 역량이 슈퍼히어로급으로 격상되지 않는다.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모든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일리도 만무하다. 사고가 나면 그저 손만빨고 있을 정부는 없겠지만 스스로를 절대자라는 인식을 갖고 내놓은 발상이라는 게 넌센스다.
사고의 실체는 정부가 양산한 엄격한 규제에 있다. 우리에게는 100만여명의 감리원들이 있지만 강력한 처벌이 두려워 현장에 나가길 꺼려하는게 현실이다. 적재적소에 인력투입이 어려워지니 사고가 발생하고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기존의 등급체계를 깡그리 무시하고 국가인증 하나로 모든 사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오만방자함까지 느껴진다.
하루이틀 당하는게 아닌 업계에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행정경력이 은퇴 후 기술경력으로 둔갑하는 한국의 시장 특성상 선발기준의 무게를 민간, 공무원 어디에 두냐에 따라 최악의 부패제도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해가 갈수록 재정발주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전관으로 갈 곳이 사라지고 있는 공무원들의 노후를 누가 책임질것이냐는 현실을 감안하면 무리한 비약도 아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미국은 로비를 합법화하면서 이를 증명했다. 초기 미국 역시 로비의 도덕성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어떠한 규제와 감시를 하더라도 로비는 더욱 은밀해지고 깊어질 뿐이라는 경험을 터득했다.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로비 자체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그에 대한 도덕성 판단은 국민의 몫으로 넘기면서 문화로 자리잡았다.
사고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하는일이다보니 근절이 불가능하다. 명확한 인재사고는 잡아야겠지만 세상 이치를 모두 깨우치지 않는 한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정복할 수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