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IT·보험·엔지니어링, 우리는 모두 용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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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IT·보험·엔지니어링, 우리는 모두 용역입니다”
  • 정원기 기자
  • 승인 2025.03.07 16: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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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기 기자

시대가 흐르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거나 바뀐다. 호롱불이 전등으로, 주판이 계산기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엔지니어링도 마찬가지다. 설계·건설사업관리를 통칭하던 용역이라는 표현은 엔지니어링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다만 대다수는 아직도 용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름이 바뀐지 수년이 지났지만 전문 업역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문제는 나라 살림을 담당하는 정부마저 그렇다는 것이다. 정보화사업, 광고 및 디자인, 보험, 학술연구, 건설기술, 엔지니어링 활동 등 12가지 산업은 모두 ‘용역’이라는 두 글자로 퉁쳐서 표현한다.

생각해보자. 보험과 정보화산업은 엔지니어링과 전혀 다른 성격의 산업이다. 위험보장을 목적으로 우연한 사건 발생에 관하여 금전 및 그 밖의 급여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대가를 수수하는 보험산업과 정보의 수집·가공·저장 등을 수행하는 정보화사업이 엔지니어링과 같이 묶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 업계는 피해를 보기 일쑤다. 입법 예고된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살펴봐도 그렇다.

개정안은 용역계약 이행 하자 발생 시 부정당제재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계약 이행을 조잡하게 한 경우 하자보수비율에 따라서 3개월에서 최대 24개월의 입찰 제한을 받는다는 의미다.

당초 소프트웨어 분야로 한정할 예정이었지만 국가계약법상 소프트웨어가 용역으로 구분돼 있어 엔지니어링까지 확대·적용될 방침이다. 엔지니어링업계는 말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얻어맞은 격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엔지니어링사는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뜩이나 하도급 금지법이니 지방계약법이니 하며 엔지니어링업계의 경영 환경은 점점 악화하고 있는데 규제가 하나 더 생긴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규제로 일변하는 정책은 시대의 흐름과도 맞지 않다. 한국 경제를 이끌던 반도체가 최근 경쟁력을 잃자 특별법까지 논의하며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거론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이제는 엔지니어링산업을 키우려고 하기보다는 뒷걸음질 치게 만들려는 공작이 아닌지 의심까지 드는 지경이다.

엔지니어링산업은 한국 경제에 있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적어도 일자리 부문에서는 그렇다. 경기가 좋거나 나쁘거나 엔지니어링업계는 청년 채용에 적극적이다.

청년고용가점제라는 제도적 장치가 이유이지만 어쨌든 매년 쏟아지는 청년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영업이익 1%를 기록하면서도 매년 총 임직원의 3%를 신규로 채용하고 있다.

다시, 용역이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용역은 업무 편의상 기술용역과 일반용역으로 구분된다. 정녕 국가계약법상 소프트웨어 분류가 용역으로 구분돼 있어 어쩔 수 없이 엔지니어링까지 확대·적용해야 한다면 일반용역에 한정해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욕심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선택을 했던 부부는 결국 빈털터리가 됐다. 이제라도 엔지니어링산업의 배를 가르려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산업이 쇠퇴하면 결국 모두에게 손해만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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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치기 2025-03-11 20:54:16
용역 : 물질적 재화의 형태를 취하지 아니하고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

전문 기술자를 내려치기하는 용어.
홀대가 일상인데 이제는 토건족으로 몰려 처벌 위험까지 높아졌다... 이러니 누가 엔지니어를 하려고 하는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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