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쟁중심 시장환경을 조성해 글로벌시장 진출지원을 확대한다”라는 명분으로 글로벌 기준의 입찰방식을 적용한다는 종합심사낙찰제가 시행된지 8년이 지났다. 당시 국토부 측이 내건 또 다른 명분은 “국내 입찰제도의 변별력이 부족해 기술개발도 해외진출도 안되니, PQ통과업체수를 줄이고 QBS 즉 기술에 의한 낙찰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국토부의 종심제는 그러나 글로벌입찰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제도설계 실패와 한국입찰 정서법이 가미되면서 제대로 흑화됐다. 정확히 종심제는 글로벌제도 입찰제도와 맞지 않는데다 기술개발과 기술변별력 향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나타나는 종심제의 부작용과 부조리만 생각하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인다.
종심제는 글로벌제도를 차용했다는데, 그렇다면 글로벌시장에서 보편화된 입찰제도는 무엇인가. 글로벌 입찰제도의 기본은 QCBS다. 통상 기술부분인 TP와 가격부분인 FP를 발주처에 제출한다. 기술평가인 TP는 RFP와 적합여부만 따져서 맞으면 통과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외부평가위원도 필요가 없고 정량적 요소만 따져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이후 가격인 FP와 TP를 합산해 우선협상자를 선정한다. 물론 QCBS가 가격경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할 수 있지만, 발주처와 사업자들간 적절한 가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막가파식 돈키호테는 쉽사리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상 80%수준의 낙찰률을 강제하고, 사업비 자체가 낮게 계상돼있는 한국의 QBS보다 글로벌의 QCBS가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폐해는 이제 말하기도 지긋지긋한 전직관료와 로비전이다. 실상 그렇지 않지만 QBS가 QCBS보다 더 대가를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국내에서는 로비전으로 발생하는 비용으로 인해 QBS의 장점이 모두 분쇄된다. 여기에 검찰수사 리스크까지 더해진다.
종심제 로비 비용은 발주처 내부직원용인 전관채용과 외부평가위원 비용인 로비비로 나뉘어진다. 최근 철도전관의 연봉이 3억5,000만원에 달하고 있다. 아파트가 무너져 건축분야 LH가 조리돌림 당하는 상황에도 LH전관은 굳건하다. 철도와 LH뿐만 아니라 구조와 지반을 제외하고 모든 분야가 전관으로 도배됐다. 100%는 아니지만 이들이 설계의 질을 높이고 엔지니어링기술의 발전을 이끌 가능성은 0%에 수렴된다. 로비비도 종심제 이후 5~6배 늘어난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전관을 채용하고 로비비용을 가져다 바치고, 검찰조사가 들어오면 사용되는 변호사 수임료까지 모두 비용으로 잡아보자. 이 비용을 엔지니어의 임금 등 처우를 높이고, 기술개발에 사용한다 하더라도 현재 영업이익률보다 더 큰 이익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고품질 인재와 기술을 기반으로 해외진출까지 성공하면 규모의 경제까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종심제는 말만 번지르르 했지, 발주처 공무원들의 노후대비와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토부의 종심제가 얼마나 좋으면 지자체까지 따라서 종심제를 한다고 저 난리를 칠까 싶다. 이런 부작용과 부조리를 청취했는지, 국토부도 금액 상향을 통해 대상 사업을 축소하는 등 이리저리 제도를 개선해왔다. 하지만 해악만 가득한 종심제를 굳이 구태여 유지시키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킨다” 그들의 속내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꼴이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고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점을 진지하고 고려할 때, 종심제는 개선이 아니라 폐지가 답이다.
정장희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