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데일리)조항일 기자=“차를 버리자”
12월 15일 오후 3시의 귀마라스항. 대우건설 소장과 미팅까지는 2시간여가 남았지만 마음이 급했다. 목적지인 파나이까지는 불과 2km. 단 2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우리가 타야할 화객선을 기다리는 차량의 행렬은 도통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30여분쯤 지나자 배 두척이 동시에 들어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가 했지만 15분이 넘도록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차 밖을 나가기 싫었지만 상황을 살펴봐야 했다. 건물 뒤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에 수많은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배를 보니 이미 들어갈 공간은 없는 듯 했다. 우리 차례는 고사하고 앞의 차들도 더이상 탑승이 불가능해보였다. 항구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니 두척의 배가 파나이로 갔다 와야만 탈수가 있다고 했다. 이미 한차례 약속을 연기한 상황에서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차를 버리고 150여m 되는 거리를 달려 배에 올라탔다. 최근 10여년동안 숨이 차게 뛰어본 건 이때가 처음인 듯 싶다.
시간표를 너무 신뢰한 게 문제였다. 30여분마다 배편이 있는 것으로 적혀있었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닌 필리핀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이름모를 섬마저 연륙교로 연결돼 있는 한국의 생활에 젖어 배를 타본 경험이 아득히 먼 옛날이여서이기도 했다.
▲가족과 생이별한 17세 소녀
더운 날씨에 뜀박질을 하다보니 짜증이 올라오면서 아침 출항할 때가 떠올랐다. 오전 8시 50분에 일로일로 화객터미널에 도착해 9시 30분에 출발하는 배를 기다렸다.
필리핀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저기에 선글라스를 끼고 감시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는 시큐리티들 속에서 현지 촬영과 인터뷰를 하는건 예상보다 어려웠다. 무시하고 일을 하다보니 한 시큐리티가 따갈루어를 하면서 다가와 손으로 X자 제스쳐를 취했다. 우리와 동행한 필리핀 엔지니어에게 통역을 부탁했더니 내 여권을 가져갔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마닐라에서는 DPWH 관련 차량이라는 표식을 붙이고 다녀 이런적이 없었는데 일로일로에서는 일반 렌트카를 빌렸더니 얄짤 없었다. 악수하는 제스쳐를 취하며 100페소, 2,500원을 쥐어 줬다. 필리핀 근로자의 하루 평균 임금이 900페소라는데 적지 않은 금액이다. 처음에는 이러면 안된다 했지만 선글라스 뒤로 가려지지 않는 시큐리티의 웃음이 보였다. 마지못해 받는 듯 하더니 이후로는 아예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했다. 하고싶은 것 다 하라는 것이었다. 일로일로는 세계 유일의 금연도시라 담배를 피면 최악의 경우 바로 벌금을 때린다. 일로일로 시장이 애연가였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겨 담배를 못피자 금연도시로 바꿨단다. 눈치보며 담배 한 까치를 꺼내봤다. 누구하나 제재하는 사람이 없었다. 100페소의 효과는 생각이상이었다.
기다리면서 한 소녀를 인터뷰했다. 귀마라스에 본가가 있는 17살 소녀는 공부를 잘해 가족과 떨어져 일로일로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일로일로는 한국의 청주와 같은 곳으로 종합대학은 물론 분교나 전문대가 모여있는 교육의 도시다. 필리핀 최고 명문인 필리핀대 분교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어학원들이 일로일로에 대부분 모여있는 이유다. 청정지역으로 관리하다보니 카지노나 유흥문화도 없다. 재미없는 도시라는 얘기다.
그녀는 크리스마스겸 연말이라 방학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귀마라스행 배를 타려고 했다. 평소에는 한달에 한번, 날씨상황에 따라서는 6개월동안 집을 가지 못한적도 있었다. PGN 교량에 대해서 정확한 이름은 몰랐지만 다리가 생긴다는 사실 자체를 기대하는 얼굴에서 부모의 품이 그리운 여느 17세 소녀의 모습이 비쳤다.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귀마라스행 배가 출발했다. 연인, 가족단위의 필리피노로 배가 빼곡히 찼다. 기다렸던 시간이 허탈할 정도로 배는 순식간에 귀마라스항에 선착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귀마라스의 풍경을 담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까보다 더 풍채가 큰 시큐리티가 다가왔다. 사정을 설명했지만 아까보다 설득의 난도가 있었다. 이번에는 100페소로 끝내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를 찔러넣어보니 400페소가 있었다. 어깨를 툭 치면서 돈을 쥐어주니 "No No No"를 외쳤지만 바뀐건 장소였을 뿐 표정은 익숙했다. 자리를 피해주더니 배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PGN 교량에 요동치는 부동산
선착장에 내려 PGN A섹션의 종점부로 향했다. 자연으로 뒤덮인 섬인만큼 정비가 부실할 것이라는 생각이 깨지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마닐라와 같은 화려한 빌딩은 없었지만 질 좋은 도로가 잘 깔려 있었다. 중간중간 규모가 큰 리조트들도 보였다. 지옥같던 마닐라의 교통 정체에서 벗어난 때문인지 시원하게 깔린 도로와 찾아보기 힘든 차는 상쾌함을 주기 충분했다.
구글맵으로는 목표까지 꽤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는데 30분이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에 점심을 먹으러 인근의 한 식당을 찾았다. 조용한 가게였지만 이미 3~4개 테이블에서 가족단위의 필리피노들이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문을 했는데 식당 여종업원이 스마트폰을 들고 우리 테이블에 찾아왔다. 한국사람을 처음 봤는지 사진을 찍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쥬얼의 음식들이 나왔다. 양은 많고 맛도 좋았다. 주문한 망고쥬스는 역시 과일쥬스는 동남아가 최고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음식이 하세월을 기다려야 나왔다는 걸 빼고는 모든게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산길을 지나면서 듬성듬성 놓여진 민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와 함께 한 필리핀 엔지니어들의 말에 따르면 PGN 건설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대 땅값이 최소 2~3배는 올랐다고 한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초등학교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내 관심을 끈 건 학교 운동장 어디에나 있는 농구대였다. 심지어는 나무로 된 농구대도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농구의 인기가 대단하다. 마닐라에서도 학교, 공원 같이 넓은 공간에는 여지없이 농구코트가 항상 있었다. 숙소에서도 TV를 켜면 미국 자국의 농구리그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국제대회에서 필리핀을 만날때마다 고전하는 한국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의문의 남성들과 밀림으로
내릴때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렌트카 기사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필리핀 엔지니어들도 PGN 현장에 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렌트카 기사가 창문을 열고 민가에 앉아있는 필리피노들에게 길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같은 곳을 두어번 반복해 오가는 와중에 시계를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한 배를 타기 위해서는 이미 현장에 있어야 했다. 속절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에 한대의 웨건 차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색 계열의 옷에는 survey라고 새겨진 옷을 입은 4명의 남성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 우리 상황을 얘기했더니 자기들도 가는길이라고 따라오라고 했다. 눈치껏 측량업체인가 싶었지만 필리핀 엔지니어에게 물었더니 자신들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들이 안내한 곳을 따라가니 밀림이 나타났다. 왜 우리를 도와주는지 알지 못한 상황에서 출장에 맞춰 새로 산 흰색 정장 운동화가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진흙탕에 빠졌을 때는 순간 욕이 나왔다. 그것도 잠시, 한치 앞이 안보이는 밀림은 산속이나 숲속에 여전히 반군이 간간히 존재한다는 필리핀 현지 상황을 들은터라 공포감을 더 했다.
얼마나 더 가야하냐고 물으니 밀림을 뚫고 300여m를 가야 해변길이 나온다고 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상황에서 일로일로에 가는 배를 늦지않게 타기 위해 더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얘기하고 드론을 띄웠다.
영상을 찍고 난 후 서둘러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일정도 일정이지만 가공되지 않은 귀마라스의 밀림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여전히 정체를 모르는 이들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서 우리를 안내해준 데 대한 고마움은 표시하고 싶었다. 그게 더 안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담배를 피냐는 말에 처음에는 괜찮다던 이들이 한국 담배라는 말에 모두가 한 까치씩을 원했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내친김에 이들에게 1,000페소 한장을 줬다. 자본주의 미소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제서야 내 마음도 함께 놓였다.
▲쇼핑몰 인파, 그리고 PGN
숨을 고르고 파나이행 배에 오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진흙탕에 빠진 운동화는 명을 다한 듯 했다. 모든 걸 체념한 체 앉아서 TV를 보니 한국 남자아이돌의 공연 영상이 나왔다. 요즘 아이돌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남자아이돌은 더욱 관심 밖이었다. 필리피노들에게 눈을 돌렸다. 무표정하게 TV를 보고 있었다. 한국말도, 저 아이돌도 누구인지 모르는건 나랑 마찬가지인 듯 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일찌감치 선상으로 나왔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빼곡히 주차된 오토바이와 차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야 했다. 선착장에는 오전보다 사람들이 더욱 많았다. 지프니는 다녔지만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우버택시 앱을 깔았는데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운 좋게 길건너편의 택시를 급하게 잡아 탔다.
타자마자 택시기사가 말했다. “한명당 200페소씩 내라”
우버로 확인한 요금은 200페소가 채 되지 않았다. 200페소면 5,000원이다. 미터기를 가리키면서 그냥 가자고 했는데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다. 이유나 들어보자 했더니 크리스마스라 그렇단다. 피로가 누적됐고 약속도 잡혀 있어 돈을 더 주긴 했지만 기가 찼다. 지친 몸을 이끌고 창밖을 내다봤다. 지프니를 탄 어린 꼬마 여자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집에 있는 딸이 떠올랐다. 일정을 마치고 크리스마스 겸 선물을 사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미팅을 마치고 숙소 옆의 SM몰을 방문했다. SM몰은 스타필드와 같은 복합쇼핑몰로 필리핀에서 가장 흔하게 볼수 있는 쇼핑센터다. 오후 8시가 다 됐지만 식당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샵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딸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장난감 코너에 갔다. 어느정도 페소에 익숙해져서 금방 계산이 됐다. 한국물가와 동일했다. 이게 맞나 싶어 가게를 나와 돌아다녔는데 식당의 가격도 한국과 같았다. 일본 라멘 하나가 500페소, 1만3,000원이나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로일로의 경제가 수년전부터 급격하게 성장했다. 필리핀 전체에서 성장률이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였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성수기로 사람들이 더욱 몰린 탓도 있지만 다른 SM몰에서도 이런 인파는 드물었다.
조금 한적해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킨 뒤 요란한 하루를 되돌아봤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일로일로는 엄청난 대도시였다. 필리핀에서 교량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러한 대도시에 PGN 교량이 건설되면 서비사야 일대의 경제는 물론이고 외형도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파나이나, 귀마라스섬이 한국인에게 멀지 않은 미래에 낯설지 않은 곳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생각을 직감했다.
카페에 나오면서 불현듯 귀마라스항에서 버리고 온 차가 떠올랐다. 어떻게 됐냐면 우리가 떠난 후 4시간이 지나서야 파나이에 도착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