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업계 역사상 최초로 대정부 집회까지 계획될 만큼 거센 반대에 부딪쳤던 지방계약법 개정안이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다. 당초 2~4개월이었던 부실감리에 대한 입찰제한 기간을 감리는 11~13개월, 설계분야에 대해서는 처분을 신설하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검단아파트 붕괴를 필두로 여기저기 신축단지에서 부실이 발생되다보니 건설안전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차원에서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엔지니어링업계는 억울했다. 건축분야인 검단아파트 주차장 붕괴를 뜬금없이 엔지니어링 전반으로 확대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부실의 책임소재를 정확히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설계분야 부실까지 처벌한다면 웬만한 엔지니어링사는 끊임없는 영업정지의 공포속에 살아야 한다.
대규모 집회라는 강행과 협상을 오가던 지방계약법 개정안은 결국 설계 처벌은 삭제하고 감리부실은 7~9개월로 소폭하향한 정부안을 업계가 수용하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물론 업계 내에서 ‘고의 또는 중과실’로 한정하자는 의견과 내친걸음인데 집회를 통해 규제와 탄압을 받는 엔지니어링의 실태를 전국민에 토로하자는 의견도 상당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행안부는 행안부대로, 엔지니어링업계는 업계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강대강 상황에서 협단체들은 정부와 업계의 의견을 조율해 비교적 완만한 협의안을 도출해 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업계, 협회, 정부 모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이성적 판단을 했다.
시계를 7년전으로 돌려보자. 업계는 부실공사 발생시 엔지니어에 대한 형사처벌을 골자로 하는 건진법 87조2항에 대해 4만5,000명에 대한 탄원서를 국토부에 제출한 바 있다. 결과는 당초 국토부가 제시한 개정안에서 일정부분 완화된 안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범위는 줄이고 껍데기만 남긴 게 지방계약법 개정안과 비슷하다. 두 법안 모두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자 실질적인 것은 피한것은 다 좋은데, 어떻게 됐든 엔지니어링업계에는 지속적으로 규제가 쌓이는 꼴인 셈이다.
문제는 ‘규제가 지속적으로 쌓이는’ 이 관점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건진법과 지방계약법 두 사례 말고도 엔지니어링업계에는 법과 규칙과 내규 또 관습까지 막대한 규제가 켜켜이 쌓여있다.
지난달 오송 지하차도 사고로 현장 감리단장에게 6년이 구형됐다. 이 단장은 사고를 막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쳤지만 경찰의 늦은 출동으로 참사를 피할 수 없었다. 관련 기관만 해도 행복청, 금강유역청, 충북도, 청주시가 있지만 공무원 2명만 불구속 기소됐을 뿐, 실형은 현장소장과 감리단장 뿐이었다. 같은 기준이면 공무원들 모두 구속되고 해당 발주청은 1년간 정지를 시켜야한다. 대한민국 어느 직업에서 업무를 잘못했다고 감옥에 보내나. 최악의 경우 책임지고 퇴사하는 정도지.
인간에게 책임과 리스크를 지우려면 돈이나 명예로 보상해야 한다. 의사도 책임과 리스크를 돈으로, 군인과 경찰은 명예로 보상 받는다. 하지만 엔지니어링업계는 30년차 감리단장이 3년차 IT엔지니어 보다 연봉이 더 낮고, 명예는커녕 사고가 있을 때마다 토건족이라고 전국민적인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사는 낮은 대가와 규제로 전전긍긍하고 있고, 엔지니어들은 불편부당한 현실에 탈토를 시도하고 있다.
아테네는 중요한 전투에 진 최고사령관에게 항상 그 책임을 물어 처형하거나 추방했다. 아테네의 8명의 사령관은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도 스파르타해군을 꺾고 승리해 나라를 살렸다. 하지만 거친 풍랑속에서 빠진 실종자와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테네 시민들은 8명의 사령관을 처형했다. 이후 전열을 재정비한 스파르타군이 다시 몰려왔을 때 누구하나 사령관으로 나서지 않았다. 결국 아네테는 멸망해 모든 시민이 노예로 팔리고 수천년간 외세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엔지니어링산업은 어느새 보상없이 처벌만 가득한 곳이 됐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규제하고 처벌하면, 종국에는 엔지니어링업계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이러면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엔지니어가 없어지고 매일 붕괴와 부실이 일어날 것이다. 8명의 사령관을 처형한 아테네처럼 말이다.
정장희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