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의 그늘②]BIM 대세론에 휘둘리는 엔지니어링사

정부, 2030년까지 전면 BIM도입 "전 인력 BIM가능화에 100억원"

2024-03-27     조항일 기자

(엔지니어링데일리)조항일 기자=정부의 스마트건설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BIM설계가 엔지니어링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전면 BIM도입을 예고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업체들은 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BIM도입 실태와 현황에 대해 진단해 봤다.

▲발주처가 조성하는 BIM 독점시장

지난해부터 도로공사와 철도공단은 발주청 가운데 유이하게 전면 BIM설계화를 단행했다. 이어 정부가 1,000억원 이상의 공사를 시작으로 BIM설계를 확대해 나가는 등 건설사업 전 분야에서 BIM도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엔지니어링사에서는 제대로 된 BIM 환경 구축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발주청의 경우 특정 BIM 사용을 권장하면서 일부 프로그램 업체의 독점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BIM은 오토데스크 제품이다. 캐드와 함께 묶어서 판매하고 있는 AEC콜렉션은 평균적으로 400만원(연간 기준) 선이다. 일반적으로 캐드와 비교해 BIM의 가격이 비싸지만 오토데스크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Revit은 써드파티의 근간이 되는만큼 시장점유율이 높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오토데스크의 토목 BIM 점유율은 90%에 달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발주청인 정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오토데스크를 중심으로 한 특정 BIM 프로그램 사용을 강요하고 있다. 실제 LH는 올초 모 사업의 사전규격공개에서 오토데스크의 Civil 3D 프로그램 사용을 명시했다가 업체들의 반발로 본 공고에서 해당 문구가 삭제된 사례도 있다.

A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2D캐드가 처음 도입된 90년대에는 오토캐드와 마이크로스테이션 등 경쟁업체들이 있었지만 어느순간 국내에서 모습을 감췄다”며 “업체들이 암암리에 발주청이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발주청이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몰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발주청에서 겉으로는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막상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데이터의 통합성을 위해 특정 프로그램을 쓰라는 무언의 압력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경쟁이 아닌 독과점 형태의 시장이 되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인 업체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B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특정 BIM이 독과점 형태를 가져가면 캐드때와 마찬가지로 가격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면서 “미국의 IT업계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중심으로 한 독점적 시장에서 현재는 대등한 규모의 회사들이 출연하면서 기술경쟁이 붙고 있는데 결국 경쟁업체가 있어야만 건전한 시장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돈 벌어서 BIM에 다 써야할판"

점과 선을 기본으로 그려내는 2D캐드와 달리 BIM은 3차원 모델링을 구현해야하는만큼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데 상당한 돈을 써야 한다. 특히 2D캐드는 특정분야와 상관없이 도면을 그려낼 수 있지만 BIM의 경우에는 기존 BIM구동프로그램을 구매한 후 특정 써드파티 프로그램을 사야 한다. 가령 도로분야의 경우에는 기존 도로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설계 사이사이 들어가는 터널, 교량 등과 관련된 써드파티를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써드파티의 개당 가격은 평균 수백만원대로 분야별로 이를 모두 갖추려면 수천만원이 기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업체들은 이를 묶음으로 판매하지만 불필요한 파티까지 사야하는 비효율적 소비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BIM 자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높은 성능의 PC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BIM을 돌리기 위해서는 시중의 완제품PC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대부분의 BIM설계팀에서는 최신 사양을 갖춘 조립식 PC를 구매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전면 BIM도입의 시기가 점차 도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BIM 설계를 위한 환경 구축과 인력교육을 위한 비용 등으로 약 1,000만원 이상이 드는게 일반적이다. 가령 BIM 전면도입이 시행되면 1,000명짜리 회사를 기준으로 BIM을 모두 구매한다면 산술적으로 100억원을 써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C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현재 대형사들을 포함해 업계에서 100억원 수익을 내는 곳이 어디 있나”라면서 “BIM 전면도입까지 회사들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중소사들은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과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들도 풀어야할 숙제다. 현재 대부분 업체들은 BIM설계가 가능한 인력들을 부서에서 지원받아 설계를 납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BIM설계도 동시에 수행해야하는만큼 상당한 노동강도를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BIM 교육을 위해 인력을 별도로 파견보내는 것 자체가 업체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다. 이 관계자는 “기존 설계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별도로 BIM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결국에 회사는 또 이러한 인력을 뽑아야 하고 보이지 않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BIM에 대한 인식 제고가 우선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BIM 전면 도입을 위한 정책을 밀어부치고 있다. 일부 발주청에서는 앞서 언급한 문제 등을 이유로 BIM설계의 외주를 일정 허용하고 있지만 도로공사는 입찰에서 감점을 받게 된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BIM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부터 다시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와 발주청이 BIM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정립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D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발주청은 물론이고 엔지니어링사의 시니어 기술자들도 BIM이 그저 보기좋게 구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서 “BIM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니 발주청은 발주청대로, 현장은 현장대로 BIM을 보는 시각이 달라 일을 위한 일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BIM의 진정한 가치는 데이터 축적에 있다”면서 “우리나라에 BIM이 도입된지 15년여가 다되가는데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과정이 대부분 생략된 데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다수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BIM 활성화를 위한 빅데이터 축적에만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우리는 여전히 걸음마단계 수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존 한국의 설계 문화도 BIM 구축을 어렵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B엔지니어링사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설계가 컨셉드로잉 정도면 되다보니 BIM이 연착륙하게 된 이유도 있다”라면서 “우리나라는 시공적인 측면까지 반영해 설계를 할 정도로 설계가 디테일하다보니 뿌리부터 BIM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설계 대가 현실화 문제도 거론됐다. C사 관계자는 “현재 BIM설계비는 기존 설계비에 태워 주는 방식으로 돼 있는데 투입되는 비용대비 대가가 너무 낮다”라면서 “평균적으로 설계비의 25%정도는 되야 하는데 이것도 해볼만 하다는 거지 적당한 수준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